“전쟁 나면 나를 두고 갈까 봐…”(14)
2010년 겨울,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났던 날의 일이다.
그날 나는 시장을 보러 잠깐 외출했다.
한두 시간쯤 지나 집에 돌아왔는데
어머니 눈이 심하게 충혈되어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표정이었다.

전쟁을 겪은 세대
어머니는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겪었고
또 전쟁도 겪은 세대였다.
특히
한국 전쟁의 기억은
어머니 세대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였다.
그래서인지
연평도 포격 소식이 나오던 날
어머니는 몹시 불안해 보였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전쟁 나면 너네가 나를 안 데리고 갈까 봐…”
나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사라진 돈
어머니는 계속 말을 이었다.
“돈이라도 주면 나를 데려갈 것 같아서
돈 있는 것 다 찾아 집에 갖고 왔는데
없어졌다.”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어머니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저도 외출했다 왔고
애들도 아직 학교에서 안 왔어요.”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계속 찾고 계셨다.
그러다 나중에는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그래서 말했다.
“어머니 제가 한번 찾아볼까요?”
그런데 어머니가 갑자기 화를 내셨다.
“나오면 네가 가져가려고? 안 된다. 나 혼자 찾을 거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남편이 돌아왔다
다행히 그날은
남편이 회식에서 일찍 돌아왔다.
어머니는 며느리인 나보다
아들인 남편을 더 믿는 것 같았다.
“찾아봐라.”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돈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혹시 없는 돈을 찾고 계신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었다.
예상 못한 곳
아들들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할머니.”
인사를 하자
어머니가 말했다.
“너네도 찾아봐라.”
나는 방 밖에 서 있었다.
나는 찾으면 안 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아들들이 바닥에 깔린 요 밑에 발을 넣다가
실에 발이 걸렸다고 했다.
그래서 요를 들어 보았다.
그때였다.
엉성한 바느질
어머니 바느질 솜씨는
원래 재봉틀처럼 꼼꼼했다.
그런데
그날 요 밑은
엉성했다.
듬성듬성
서툴게 꿰매져 있었다.
헝겊이 덧대어져 있었고
그 안에 뭔가 들어 있었다.
돈이었다.
만 원짜리가
쫙 펼쳐져 있었다.
남편과 아들이 세어 보니
오백만 원 조금 안 되는 돈이었다.
그날의 마음
치매가 더 심해졌을 때
어머니는 나에게 종종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들은 너어무 너어무 착하고
손주들은 돈이 뭔지도 모르고
가져갈 년은 네년밖에 없다.”
그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날도 아마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너무 무서워서.
전쟁이 나면
남편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전쟁도 안 나고
전쟁 나도 엄마 두고 가겠어요?”
그 말을 듣고
어머니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그리고 뜻밖의 말을 했다.
“은행 가자.”
은행에서
은행에 가서
나에게 입금을 시키라고 했다.
그리고 은행 직원에게 자랑했다.
“우리 아들은 전쟁 나도 나를 꼭 데리고 간대.”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 전쟁 그렇게 쉽게 안 나니까
돈은 집에 두지 말고 은행에 맡기세요.”
그날의 점심
은행에서 나오자
어머니가 말했다.
“내가 밥 살게.”
우리는 보리밥집에 갔다.
어머니는 집에서
참기름과 달걀프라이 두 개를 만들어
싸 가지고 왔다.
“보리밥은 싸지만 금방 배고프다.
그래도 계란은 꼭 먹어야 한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의 나는 서러웠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지옥 같은 마음을 안고 살았던
어머니가 더 안쓰럽다.
지금 다시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면
나는 그저
말없이 안아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