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신날, 어머니는 왜 화를 내셨을까
■ 두리여사님의 생신
그날은 어머니 생신날이었다.
이상하게도
올해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이모님들, 경로당 친구분들, 친척들까지
많은 손님들이 다녀가셨다.

■ 하루 종일 이어진 상차림
우리 가족은
하루 종일 부엌에서 살았다.
- 팔보채
- 회
- 잡채
- 떡
- 미역국
차리고 치우고
또 차리고 치우고
주택이라 더 바빴고
정말 하루 종일 동동거렸다.
■ 모든 손님이 돌아간 후
밤이 되어
손님들이 모두 돌아가고
우리 가족만 남았다.
그때 어머니는
벽을 등지고 누워 계셨다.
■ 예상치 못한 말
“어머니, 씻고 주무셔야죠.”
그랬더니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내가 내 생일날 하루 종일 굶어야겠냐?”
순간
모두가 멈췄다.
■ 분명 같이 드셨는데
우리는 당연히
어머니가 식사를 하신 줄 알았다.
늘 같이 드셨고
그날도 분명 같이 드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끝까지 안 드셨다고 하셨다.
■ 결국 다시 차린 밥상
어머니는 점점 화를 내셨고
우리는 결국 다시 식사를 차렸다.
하지만 이미 손님들이 다녀간 뒤라
상은 처음보다 초라했다.
■ 더 크게 터진 화
그걸 보신 어머니가
불같이 화를 내셨다.
“남은 찌꺼기 주는 거냐!”
그 말에
나는 마음이 무너졌다.
■ 그때는 몰랐다
그때 나는
어머니가 아파서 그러신 줄 몰랐다.
그저
생트집을 잡으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속상했고
마음이 힘들었다.
■ 손주들의 선물
손주들이
할머니 생신 선물로 속옷을 준비했다.
그런데 그것마저
마음에 들지 않으셨다.
■ 또 한 번의 서운함
“너네는 예쁜 거 입으면서
나는 왜 이렇게 큰 거에
아무 무늬도 없는 걸 사주냐.”
또다시 화를 내셨다.
그날은
무슨 말을 해도
풀리지 않는 날 같았다.
■ 분위기를 바꾼 순간
보다 못한 아들들이
노래를 틀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제야
어머니의 표정이 조금씩 풀렸다.
■ 그리고 시작된 노래
어머니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셨다.
“낙동강 푸른 물에…”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옛날 노래들을 줄줄 부르셨다.
■ 그때도 몰랐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또렷하신데 괜찮은 거 아닌가…”
■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
하지만 나중에 알았다.
- 최근 일은 잘 잊어버리고
- 오래된 기억은 또렷하게 남는다는 것
그날의 모든 상황이
이미 증상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신호였다.
■ 뒤늦은 후회
지금 생각하면
그날 어머니의 말과 행동은
모두 이유가 있었다.
나는 그걸 몰랐다.
그래서
그저 속상해하기만 했다.
■ 우리가 놓치는 순간
부모님의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작은 사건들 속에서
조금씩 드러난다.

■ 남겨진 기억
그날은
힘들었던 하루였지만
지금은
이해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더 마음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