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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대문을 열고 나가신 어머니 (15)

📑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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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의 치매는 조금 특이했다.

    처음에는 치매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상적인 날이 많았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대화도 또렷했고
    기억도 정확했다.

     

    하지만 컨디션이 나쁘거나
    기분이 우울한 날,
    비가 와서 습한 날에는
    이상하게도 증상이 나타났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더 힘들어하셨다.

     

    특히 가장 괴로운 것은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필름이 끊기듯 기억이 이어지지 않는 순간

    이었다.

     

    새벽에 대문을 열고 나가신 어머니

    긴 장마가 끝난 날

     

    긴 장마가 끝난 뒤였다.

    습하고 더운 여름 새벽이었다.

    나는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대문 여는 소리가 났다.

    “철컥”

    나는 깜짝 놀라 밖으로 뛰어나갔다.

     

    맨발로 길을 건너신 어머니

     

    어머니는 인견 속옷 차림에
    맨발로 대문을 나가셨다.

    집 앞은 이차선 도로였다.

    다행히 차는 없었지만
    어머니는 이미 길을 건너고 있었다.

    평소에는
    다리가 아파서 천천히 걸으셨는데

    그날은
    놀랄 만큼 빠르게 걸으셨다.

    그리고 손사래를 치며
    누군가를 부르고 계셨다.

     

    “언니가 불렀다”

     

    나는 뛰어가서
    어머니를 붙잡았다.

    “어머니 어디 가세요?”

    어머니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언니가 불렀다.”

    나는 순간 멈췄다.

    어머니가 말한
    언니는

    이미 돌아가신 지
    10년도 넘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모셔오다

     

    나는 말했다.

    “어머니 아마 꿈꾸신 것 같아요.”

    집으로 모시고 왔지만
    어머니는 계속 말했다.

    “나를 부르니까 가야 한다.”

    평소에는
    힘이 약하셨는데

    그날은
    힘이 정말 장사였다.

    간신히 방으로 모시고 와
    눕혀 드렸다.

     

    깊은 잠

     

    맨발로 나가셨던 발을
    따뜻한 수건으로 닦아 드렸다.

    그리고 잠시 뒤
    어머니는 깊이 잠드셨다.

    나는 그날
    정말 십 년은 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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