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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반대하던 엄마, 싸리비를 들고 쫓아오던 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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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데에는
    각자의 이유가 있다.
    나에게는 ‘맏이 딸’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맏이 딸이 결혼을 미루게 되는 이유

     

    결혼 이야기는 마음먹는다고 쉽게 꺼낼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특히 맏이로 살아온 딸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동생들 학비며 생활비까지 보태며 살다 보니
    직장 생활도, 내 삶도
    어디선가 재미를 잃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엄마께 결혼하겠다는 말은
    입 안에서만 맴돌 뿐
    끝내 꺼내지 못했다.
    형편상 분명 반대하실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 반대가 시작된 순간

     

    어느 날,
    데이트를 마치고 남편이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엄마였다.
    그 손에는 싸리비가 들려 있었다.

    “어디 넘볼 데가 없어서
    우리 딸을 넘보나, 이 노옴!”

    때릴 것처럼 다가오자
    남편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컴컴한 골목길로 몸을 숨겼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헤어졌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는 어려서
    그 모습마저도 좋았으니
    나 역시 철이 없었던 것이다.

    다음 날,
    어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어두워서 벽에 바짝 붙어 있으니 못 찾으시더라며,
    “어디로 도망갔니?” 하시고 돌아가셔서
    한참 서 있다가 집에 갔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웃었다.

    지금 생각하면 맞더라도 엄마께 인사하고
    떳떳하게 나서는 게 훨씬 믿음직했을 텐데
    그때는 몰랐다.

     

    부모의 반응은 왜 이렇게 달랐을까 (아버지 vs 어머니)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과일을 사 들고 우리 집에 찾아왔다.

    “어머님, 아버님.
    호강은 못 시켜 드려도
    남들만큼은 잘 살겠습니다.
    결혼을 허락해 주십시오.”

    그 말을 듣고
    아버지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말씀하셨다.

    “이만하면 됐어. 데려가.”

    엄마는 옆에서 펄펄 뛰셨다.
    바로 허락하는 아버지가 어딨냐며
    나는 반대라고 하셨다.

    결혼 후에도
    그 여파는 남아 있었다.
    남편은 회식이나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도
    육회와 막걸리를 사 들고
    장인어른을 찾아뵈었다.

    두 분 다 소띠라서
    금세 환상의 친구가 되었고
    술자리가 길어지기 일쑤였다.

    장모님과는 한동안 서먹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마저도 그 집 나름의 질서였던 것 같다.

    그때는 이 모든 일이
    그저 웃지 못할 결혼 전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았다.
    사람 사이의 감정은
    처음부터 같은 온도로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 온도의 차이가
    훗날 얼마나 긴 시간을 함께 지나가게 될지
    그때는 전혀 몰랐다.

     

    그때는 그랬다.

    그때는 웃고 넘겼지만

    그 온도 차이는
    훗날 더 깊은 의미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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