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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데에는
각자의 이유가 있다.
나에게는 ‘맏이 딸’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맏이 딸이 결혼을 미루게 되는 이유
결혼 이야기는 마음먹는다고 쉽게 꺼낼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특히 맏이로 살아온 딸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동생들 학비며 생활비까지 보태며 살다 보니
직장 생활도, 내 삶도
어디선가 재미를 잃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엄마께 결혼하겠다는 말은
입 안에서만 맴돌 뿐
끝내 꺼내지 못했다.
형편상 분명 반대하실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 반대가 시작된 순간
어느 날,
데이트를 마치고 남편이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엄마였다.
그 손에는 싸리비가 들려 있었다.
“어디 넘볼 데가 없어서
우리 딸을 넘보나, 이 노옴!”
때릴 것처럼 다가오자
남편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컴컴한 골목길로 몸을 숨겼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헤어졌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는 어려서
그 모습마저도 좋았으니
나 역시 철이 없었던 것이다.
다음 날,
어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어두워서 벽에 바짝 붙어 있으니 못 찾으시더라며,
“어디로 도망갔니?” 하시고 돌아가셔서
한참 서 있다가 집에 갔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웃었다.
지금 생각하면 맞더라도 엄마께 인사하고
떳떳하게 나서는 게 훨씬 믿음직했을 텐데
그때는 몰랐다.
부모의 반응은 왜 이렇게 달랐을까 (아버지 vs 어머니)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과일을 사 들고 우리 집에 찾아왔다.
“어머님, 아버님.
호강은 못 시켜 드려도
남들만큼은 잘 살겠습니다.
결혼을 허락해 주십시오.”
그 말을 듣고
아버지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말씀하셨다.
“이만하면 됐어. 데려가.”
엄마는 옆에서 펄펄 뛰셨다.
바로 허락하는 아버지가 어딨냐며
나는 반대라고 하셨다.
결혼 후에도
그 여파는 남아 있었다.
남편은 회식이나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도
육회와 막걸리를 사 들고
장인어른을 찾아뵈었다.
두 분 다 소띠라서
금세 환상의 친구가 되었고
술자리가 길어지기 일쑤였다.
장모님과는 한동안 서먹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마저도 그 집 나름의 질서였던 것 같다.
그때는 이 모든 일이
그저 웃지 못할 결혼 전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았다.
사람 사이의 감정은
처음부터 같은 온도로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 온도의 차이가
훗날 얼마나 긴 시간을 함께 지나가게 될지
그때는 전혀 몰랐다.
그때는 그랬다.
그때는 웃고 넘겼지만
그 온도 차이는
훗날 더 깊은 의미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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