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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시어머니는 1921년생이었다.
일제 강점기와 광복, 그리고 6·25 전쟁까지
모두 겪으신 분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분의 삶에는 ‘아끼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쌀 한 톨도 허투루 버리지 않으셨고
전기는 늘 최소한으로 쓰셨다.
물도 마찬가지였다.

제철이라는 원칙
식재료는 언제나 제철 음식을 사 오라고 하셨다.
과일도 제철 과일만 드셨고
철이 지나간 과일은 거들떠보지도 않으셨다.
생선은 굽기보다는 찌개로 드셨다.
생선찌개에 쌈을 주로 드셨다. 상추, 깻잎, 배추, 데친 배추,
쌈으로 드실 수 있는건 다 드셨다.
그래서 다시마, 미역쌈까지
쌈이란 쌈 종류는 사계절 내내
상 위에서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그땐 몰랐던 생활의 이유
그때의 나는 그저 까다롭고 엄격한
어른이라고만 생각했다.
왜 이렇게까지 아껴야 하나 싶었고,
왜 늘 같은 방식이어야 하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았다.
그건 성격이 아니라 그분이 살아온
시간의 방식이었다는 것을.
휴지는 한 칸이면 된다고 믿던 사람
그런 분이셨다. 쌀 한 톨, 물 한 컵,
전기 스위치 하나까지 모두 이유가 있던 사람.
그러니 아이에게도
그 기준은 예외가 아니었다.
둘째가 응가를 하고
화장지를 길게 뜯어 쓰는 걸 보시고는
호되게 혼을 내셨다.
“야야, 휴지는 한 칸이면 된다. 뭐 하러 그렇게 쓰노.”
그 말은 훈계라기보다는 그분에게는
삶의 상식에 가까웠다.
화장실에서 들려온 통곡
그러던 어느 날, 집 안이 유난히 조용하다 싶더니
화장실 쪽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둘째였다. 응가를 하고 변기 위에 앉은 채
통곡을 하고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아이는 울면서 말했다.
“응가했는데… 휴지를 한 칸만 쓰래…”
말을 잇지 못하고 엉엉 울었다.
어른의 기준과 아이의 세계
그 순간 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른에게는 당연한 한 칸이
아이에게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세상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이를 안아 달래면서도
시어머니를 원망할 수도, 아이만 두둔할 수도 없었다.
그분에게 아끼는 건 버티는 법이었고,
살아남는 방식이었으니까.
그땐 몰랐다
그때는 몰랐다. 이런 장면들이 그저 웃픈 추억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이 조금씩 흔들리기 전 마지막으로 붙들고 있던
원칙이었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아이를 먼저 품었지만,
훗날에는 그 어른의 마음도 이해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 시간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시절에는 그 모든 생활 습관이 당연한 줄 알았다.
훗날, 그 익숙한 원칙들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을 때
그제야 나는 알아차리게 된다.
아, 이건 단순한 고집이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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