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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봄날, 어머니가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 그때는 몰랐던 변화의 시작)

동네 벚꽃나무가 봉우리를 열고
눈발처럼 꽃잎을 날리기 시작하던 봄날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목욕탕에 다녀와 집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마주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숟가락을 들고 한 숟갈을 드시는가 싶더니
갑자기 숟가락을 탁 내려놓으셨다.
“가져갈 거면 말을 하고 가져가지.”
말없이 때수건을 가져갔다며, 화를 내셨다.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워낙 총명한 분이셨다.
조그만 건물이었지만
집세 계산도, 돈 관리도 늘 정확했다.
그래서 나는 혹시 내가 어머니 등을 밀어드리고
때수건을 내 목욕바구니에 넣었나 싶어
괜히 가만히 있었다.
잘 못 말하면 변명처럼 들릴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며칠 뒤,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이번에는 새 양말이었다.
서랍 안에 두었던 새 양말을 내가 가져갔냐고 물으셨다.
나는 그 서랍을 열어본 적도 없었고
새 양말이 거기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말했지만, 어머니는 화를 내셨다.
“가져갈 사람이 너 말고 누가 더 있니?.”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툭 내려앉았다.
억울해서가 아니었다.
설명해도 닿지 않는다는 느낌이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이런 일들의 빈도는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잦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남편에게 하지 못했다.
괜히 큰일로 만들고 싶지 않았고
말로 꺼내는 순간 현실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속으로만 앓았다.
동네에 치매 예방약을 처방해 주는
신경정신과가 하나 있었다.
어머니 약을 타러 갔다가
의사 선생님을 잠깐 뵐 수 있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어머니가 치매의 전조 증상이라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었다.
동네 병원이기도 했고, 그냥 하소연이나 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선생님께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제가 요즘 조그만 일에도 우울해요.
어머니가 양말이나 그런 걸 제가 가져갔다고 하셔서
우리 사이가 조금 서먹해졌어요.
집에 있기가 싫어질 때도 있어요.”
선생님은 잠시 내 말을 듣고 계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머니를 지금 당장 모시고 오세요.”
그리고 덧붙이셨다.
“아무래도 치매 초기 증상 같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께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이 어머니 모시고 오라고 하세요.”
그러자 어머니는 곧바로 화를 내셨다.
“네가, 나를 그런 쪽으로 몰아가려고 하니?”
그리고는
등을 돌리고 앉아버리셨다.
그때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의사 선생님이, 점심 식사를 하러 가시려는데
지금 오고 있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어머니께서 안 가시겠다고 화내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선생님은 어머니를 바꿔달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의사 선생님이라는 말을 듣고 전화를 받으셨다.
지금도 나는 그날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모른다.
다만
전화를 끊자마자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일어나 짧게 말씀하셨다.
“가자.”
그날 다시 처방을 받았고 그 뒤로는 한동안 괜찮아지셨다.
그래서 나는 안심했다.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정말 몰랐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잠시 멈춘 것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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