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엄마의 반대는 나에게 불쏘시개였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 나는 그저 살림 밑천인 맏이였구나.
집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우리는 그저 마냥 행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둘은 행복했다.
둘이 있어 좋았고,
귀엽고 귀여운 아들 둘을 얻었다.
그 시절의 나는 행복이 이렇게
짧게 접힐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신혼을 접고, 시어머니를 모시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실직과
어머니의 병환이 겹쳤다.
우리는 신혼 생활을 접고
본가로 들어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게 되었다.
돌아서면 밥 차리고
돌아서면 또 밥 차리고
아이들 돌보고 그때는 정말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손님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시어머니는
집안에서 완전한 어른이었다.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왔다”는 이유로
예고도 없이 벨을 누르고 들어오는 손님들.
그게 일상이었다.
그래도
좋은 점도 있었다.
아들 둘이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다는 것.
타향살이에
친척도 멀어 외로웠던 나는
몸은 힘들어도 대가족의 장점이
분명히 있었다.
새알 미역국 사건
늦봄과 초여름 사이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가 새알 미역국이
드시고 싶다고 하셨다.
쌀가루를 방앗간에서 빻아 왔지만
아이들 빨래하고
막둥이 기저귀 갈다 보니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새알을 빚으려는데 쉰 냄새가 났다.
고민 끝에 마당 화단에 묻고
흙으로 덮었다.
그리고 다시 쌀을 빻아
아이들과 새알을 빚었다. 나는 완전범죄를 꿈꾸었지만
늙은 쥐도 쓸데가 있다고
경로당에 다녀오신 어머니가
마당으로 나가시더니
긴 대나무를 들고
화단을 정확히 쌀가루 묻은 곳을 찌르셨다.
쌀가루가 대나무에 붙어서 하얗게
묻어 나왔다.
그 순간 생각했다.
아, 오늘은 무사하지 못하겠구나.
“늙은 쥐도 쓸데가 있다고
나한테 물어봤으면
고추장이나 된장에 묻으면 되지 그걸 버려?”
그러시며
세상에 처음 듣는 욕을
혼잣말처럼
줄줄이 하셨다.
욕보다 신기했던 순간
나는 그 욕을 들으면서 서럽기보다는 너무 신기했다.
아, 세상에 이런 욕도 있구나.
그때만 해도 나는 작가의 꿈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노트와 펜을 들고 말했다.
“어머니, 잠깐만요.
다시 한번 해보세요.”
어머니는 욕을 하다 말고
노트를 보는 나를 노려 보시더니 그만두셨다.
“아니 이것이 나를 가르치려 드네.”
추석날, 며느리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그해 추석,
친척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저런 며느리 봤냐. 내 욕을 적고 있더라.”
나는 설명할 기회도 없이
이상한 며느리가 되었다.
그때는 그래야만 했다.
그때는 이 모든 게 그저 버텨야 하는
며느리의 몫이라고만 생각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이 기억들이 언젠가 내가 꺼내 놓아야 할
이야기였다는 것을.
다음에는 이 어머니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그때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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