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검사 결과를 듣던 날 — 마음이 무너질 줄 알았는데(11)

📑 목차

    반응형

    검사 결과를 듣던 날 마음이 무너질 줄 알았는데......

    드디어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게 되었다.

    우리 동네에는 한방과 양방을 같이 보는 협진 병원이 있어서
    미리 전화로 검진 예약을 하면서
    인지검사도 함께 신청해 두었다.

    어머니와 내가 같이 검진을 받으니
    생각보다 훨씬 수월했다.

     

    검사 결과를 듣던 날 — 마음이 무너질 줄 알았는데

     

    검사실에서 느낀 묘한 감정

     

    당뇨와 혈압이 있으신 것 말고는
    어머니는 원래 건강한 편이었다.

    그래서 금방 끝나겠지 싶었는데
    인지검사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문제는 시간보다 마음이었다.

    검사받는 어머니를 기다리는 시간이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뜻밖의 안도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옆에서 지켜보니

    어머니는 꽤 정확하게 대답하고 계셨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직 괜찮다.

    아직 늦지 않았다.

     

    그리고 듣게 된 말

     

    그날 신경과 진료에서 의사 선생님 이야기를 들었다.

    결론은 이랬다.

    • 혈관성 치매로 갈 가능성이 높다
    • 하지만 현재는 아주 초기 단계
    • 약을 먹으면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도
    동시에 숨이 쉬어졌다.

    무너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붙잡을 시간이 생긴 느낌이었다.

     

    왜 혈관성이라고 했을까

     

    이유는 이미 나와 있었다.

    예전에 목욕탕에서 쓰러지셨을 때 찍었던 MRI 사진.

    그 사진에서
    혈관이 얇아진 부분이 보였고
    그래서 혈관성으로 판단된다는 설명이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그날 쓰러진 사건이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는 걸.

    혈관성은 주로 혈관이 막힐 때 심해지고 평상시에는 괜찮을 때가 많다는 거였다.

    그래서 우리 식구는 빨리 알아채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거였다.

     

    병원에서 나오는 길

     

    검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길가에 캐릭터 옷이랑 소품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그때였다.

    어머니가 갑자기 말했다.

    “저 핑크 머리띠 사주라.”

    나는 잠깐 멈칫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요. 사요.”

    우리는 머리띠를 샀다.
    핑크 우산도 샀다.

    어머니는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딸이 없다.
    그래서 이런 걸 사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날 나는 알았다.

    나는
    엄마를 모시는 게 아니라
    늙은 딸을 키우고 있었구나.

    쑥스럽기도 했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따뜻했다.

     

    그날 이후

     

    어머니는 핑크에 꽂히셨다.

    모자도 핑크
    양말도 핑크
    우산도 핑크

    나는 말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알았기 때문이다.

    기억은 흐려질 수 있어도

    좋아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그날 얻은 교훈

     

    병원에서 받은 진단보다
    그날 내가 얻은 건 하나였다.

    아직 시간이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