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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분명 벗었다고 했어요”(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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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우 먹으러 가다

    늦가을이었는지, 이른 봄이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공기가 차지도 덥지도 않던 날이었다.

    우리 가족은 근처에서 한우 축제를 한다기에 다 같이 가기로 했다.

    아들이 둘이라 먹는 양이 많아 평소엔 삼겹살을 먹었지만, 어머니는 돼지고기를 안 드셨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큰맘 먹고 소고기를 먹으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그날 아침이었다.
    출발 시간이 지났는데 어머니가 안 보였다.

    아침도 못 먹은 채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어디 다녀오셨어요?”

    “미장원.”

    순간 우리는 모두 어머니를 쳐다봤다.

    머리는 십 년은 젊어 보이게 굵은 펌이 들어가 있었고 손톱에는 분홍색 매니큐어가 발라져 있었다.

    경로당 친구들이 “아들네 가족이랑 나들이 갈 때 꾀죄죄하면 안 데려간다” 했다고 했다. 그래서 꾸미고 오셨다는 것이다.

    거기다 한마디 더 하셨다.

    “오늘 고깃값은 내가 낼게.”

    우리는 눈빛이 반짝였다.

    그날 고기는 정말 맛있었다.
    사춘기 아들 둘은 “소고기가 살살 녹는다”며 평소 안 먹던 미나리쌈까지 먹었다.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마음 놓고 웃었다.

     

    분명 벗었다고 했는데분명 벗었다고 했는데

     

    문제는 계산할 때였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안 하셨다.

    “어머니가 사신다면서요?”

    그러자 어머니는 태연하게 말했다.
    “지갑을 안 가져왔네. 집 가서 줄게.”

    집에 와서 옷장과 가방을 한참 뒤지시더니 오만 원을 내미셨다.

    그때 소고기 값은 이십만 원 가까이 나왔었다. 지금 물가로 치면 두 배는 될 금액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웃었다.

    “어머니가 그러면 그렇지.”

    워낙 검소한 분이라 돈 내려니 아까워서 그러셨나 보다 했다.

    그런데 그날 진짜 놀란 건 따로 있었다.

     

    외출복을 갈아입으시는데 뭔가 이상했다.

    속옷을…
    두 개를 입고 계셨다.

    입던 거 위에 갈아입을 걸 또 입으신 거였다.

    어머니는 진지하게 중얼거리셨다.

    “내가 분명 벗었는데…”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방금 전까지 웃던 웃음이 목에 걸렸다.

    장난도 아니고 변명도 아니었다.
    정말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바쁘셔서 그러셨나 보죠.”

    그날 밤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리를 하고 손톱을 칠하고 오셨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가족 앞에서 초라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손자들 앞에서 젊어 보이고 싶어서 그렇게 꾸미셨던 분이었다.

    그런데 그런 분이 속옷을 두 개 입고 나갔다.

    그 순간 처음 알았다.

    사람이 늙는다는 건 갑자기 오는 게 아니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실수처럼 농담처럼 그렇게 오는 거였다.

    나는 방문 틈으로 어머니 방을 바라봤다. 불은 꺼져 있었다.

    그날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더 늙기 전에 더 많이 말 걸어야겠다.

     

    그날 이후 나는 일부러 더 자주 불렀다.

    “어머니  이것 좀 봐요.”
    “어머니 같이 먹어요.”
    “어머니 이거 기억나요?”

    어머니는 여전히 지갑을 안 가져오셨고
    여전히 검소했고 여전히 손자 자랑을 하루 세 번은 하셨다.

    그리고 가끔 같은 말을 또 하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든 모습이 전보다 더 사랑스러워 보였다.

    아마 그날
    분홍 매니큐어를 바르고 뽀글머리를 하고
    속옷을 두 개 입고 서 계시던 그 장면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날 알았다.

    부모가 늙는 순간은
    우리가 부모를 지켜봐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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