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20) 썸네일형 리스트형 그분은 쌀 한 톨도 허투루 보지 않던 사람이었다 (4)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시어머니는 1921년생이었다.일제 강점기와 광복, 그리고 6·25 전쟁까지모두 겪으신 분이었다.그래서인지 그분의 삶에는 ‘아끼는 것’이몸에 배어 있었다.쌀 한 톨도 허투루 버리지 않으셨고전기는 늘 최소한으로 쓰셨다.물도 마찬가지였다. 제철이라는 원칙 식재료는 언제나 제철 음식을 사 오라고 하셨다.과일도 제철 과일만 드셨고철이 지나간 과일은 거들떠보지도 않으셨다.생선은 굽기보다는 찌개로 드셨다.생선찌개에 쌈을 주로 드셨다. 상추, 깻잎, 배추, 데친 배추, 쌈으로 드실 수 있는건 다 드셨다.그래서 다시마, 미역쌈까지 쌈이란 쌈 종류는 사계절 내내상 위에서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그땐 몰랐던 생활의 이유 그때의 나는 그저 까다롭고 엄격한어른이라고만 생각했다.왜 이렇게까지 아껴야 ..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날들, 그땐 어떻게 버텼을까 (3) 엄마의 반대는 나에게 불쏘시개였다.그 순간 깨달았다.아, 나는 그저 살림 밑천인 맏이였구나.집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우리는 그저 마냥 행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둘은 행복했다.둘이 있어 좋았고,귀엽고 귀여운 아들 둘을 얻었다.그 시절의 나는 행복이 이렇게짧게 접힐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신혼을 접고, 시어머니를 모시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실직과어머니의 병환이 겹쳤다.우리는 신혼 생활을 접고본가로 들어가 시어머니를 모시고살게 되었다.돌아서면 밥 차리고돌아서면 또 밥 차리고아이들 돌보고 그때는 정말어떻게 살았는지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손님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시어머니는집안에서 완전한 어른이었다.“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왔다”는 이유로예고도 없이 벨을 누르고 들어오는 손님들.그게 일상이었다.그래도좋은 .. 결혼을 반대하던 엄마, 싸리비를 들고 쫓아오던 날 (2)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데에는각자의 이유가 있다.나에게는 ‘맏이 딸’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맏이 딸이 결혼을 미루게 되는 이유 결혼 이야기는 마음먹는다고 쉽게 꺼낼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특히 맏이로 살아온 딸에게는 더더욱 그랬다.지금 생각해 보면내가 동생들 학비며 생활비까지 보태며 살다 보니직장 생활도, 내 삶도어디선가 재미를 잃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엄마께 결혼하겠다는 말은입 안에서만 맴돌 뿐끝내 꺼내지 못했다.형편상 분명 반대하실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 반대가 시작된 순간 어느 날,데이트를 마치고 남편이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서는데갑자기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엄마였다.그 손에는 싸리비가 들려 있었다.“어디 넘볼 데가 없어서우리 딸을 넘보나, 이 노옴!”때릴 것처럼 다가오자.. 이전 1 2 3 4 5 6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