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부모님 돌봄 # 치매 이야기 (16) 썸네일형 리스트형 앞이 잘 “안 보인다” 던 어머니, 이유는 따로 있었다 (17) ■ “눈이 안 보인다”는 말어머니가 어느 날부터눈이 잘 안 보인다고 하셨다.불편하다고 하셔서병원에 가자고 했더니꼭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하셨다. ■ 끝까지 고집하신 병원 어머니가 절대적으로 신뢰하는수영로터리 쪽 병원이 있었다.우리 집에서는 차로 30분이 넘게 걸렸지만그 병원이 아니면 안 가신다고 하셨다.이럴 때 보면나보다 더 또렷하고 확고하셨다. ■ 검사 결과는 ‘이상 없음’ 예약을 하고 찾아간 병원에서여러 검사를 진행했다.결과는 의외였다.노안은 있지만당뇨 관리도 괜찮고백내장 수술도 잘 되어 있고👉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다.그런데도 어머니는계속 “안 보인다”고 하셨다. ■ 답답함 속에서 반복된 방문 이런 상황이두세 번 반복되었다.검사에서는 이상이 없고어머니는 계속 불편하다고 하시고나는 점점 답.. 어머니가 경로당을 가지 않으셨던 이유 (16) ■ 어머니가 집에만 계시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어머니는그토록 자주 가시던 경로당에 가지 않으셨다.이전에는 친구분들을 만나러 나가는 것이하루의 큰 즐거움이셨는데점점 외출을 꺼려하시고 집에만 있으려고 하셨다.처음에는 단순히 귀찮으신가 보다 생각했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그 변화는 분명해졌다. ■ 나는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커서 학교와 학원으로 바빠지고집에는 나와 어머니 둘만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솔직히 말하면나는 많이 힘들었다.그래서 복지관에서 운영하는주간 보호센터, 이른바 ‘노치원’에모시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몇 번이나 함께 가보려고 했지만어머니는 단호하게 거절하셨다.지금 생각해 보면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 그때는 몰랐던 ‘경도 인지장애’ 당시의 나는 몰랐다.경도 인지장애가 .. 새벽에 대문을 열고 나가신 어머니 (15) 어머니의 치매는 조금 특이했다.처음에는 치매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정상적인 날이 많았다.컨디션이 좋을 때는 대화도 또렷했고기억도 정확했다. 하지만 컨디션이 나쁘거나기분이 우울한 날,비가 와서 습한 날에는이상하게도 증상이 나타났다.우연인지 모르겠지만그럴 때마다어머니가 더 힘들어하셨다. 특히 가장 괴로운 것은기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필름이 끊기듯 기억이 이어지지 않는 순간이었다. 긴 장마가 끝난 날 긴 장마가 끝난 뒤였다.습하고 더운 여름 새벽이었다.나는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때 대문 여는 소리가 났다.“철컥”나는 깜짝 놀라 밖으로 뛰어나갔다. 맨발로 길을 건너신 어머니 어머니는 인견 속옷 차림에맨발로 대문을 나가셨다.집 앞은 이차선 도로였다.다행히 차는 없었지만어머니는 이미 길을 건.. “전쟁 나면 나를 두고 갈까 봐…”(14) 2010년 겨울,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났던 날의 일이다.그날 나는 시장을 보러 잠깐 외출했다.한두 시간쯤 지나 집에 돌아왔는데어머니 눈이 심하게 충혈되어 있었다.평소와는 다른 표정이었다. 전쟁을 겪은 세대 어머니는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겪었고또 전쟁도 겪은 세대였다.특히한국 전쟁의 기억은어머니 세대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였다.그래서인지연평도 포격 소식이 나오던 날어머니는 몹시 불안해 보였다.그리고 나에게 말했다.“전쟁 나면 너네가 나를 안 데리고 갈까 봐…”나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사라진 돈 어머니는 계속 말을 이었다.“돈이라도 주면 나를 데려갈 것 같아서돈 있는 것 다 찾아 집에 갖고 왔는데없어졌다.”나는 차분하게 말했다.“어머니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저도 외출했다 왔고애들도 아직 학교에서 ..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13)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하시는 어머니의 탄식은 지금도 아려온다. 아이들이 커갈수록학원비, 식비, 생활비가 눈에 띄게 늘었다.그래서 나는 주말 오후마다 잠깐씩 아르바이트를 했다.그날도 일을 하고 있었는데큰아들에게 전화가 왔다.“엄마 빨리 와.할머니가 화장실에서 안 나오셔.”마침 끝날 시간이었지만걸어서 10분 거리였는데도나는 택시를 탔다. 문을 열었을 때 집에 도착해 문 앞에서 말했다.“어머니, 저예요. 문 열어주세요.”문이 열렸다.그리고 나는 멈췄다.화장실 벽과 바닥이엉망이었다.어머니는 옷을 벗은 채서 계셨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택이라 여름에도 춥다며대중탕 가시던 분이었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샤워를 시켜드렸다.깨끗이 씻겨따뜻한 아랫목에 눕혀드렸다.그때였다.어머니 눈에서눈물이.. “나 안 먹어”라고 말했던 그날을 막내는 아직도 후회한다 (12) “나 안 먹어”라고 말했던 그날을 막내는 장가간 지금도 후회한다비가 내리던 저녁이었다.남편은 회식, 큰아들은 학원.집에는 나와 막내, 그리고 어머니 셋뿐이었다.치킨을 시켜 먹고 있었는데어머니가 재채기를 하셨다.입에 있던 음식이 식탁 위로 튀었다.나는 괜찮다며 치웠지만막내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나 안 먹어. 다시 시켜줘.”사춘기였다.그래서 이해는 됐지만내 마음은 철렁 내려앉았다. 어머니의 반응 어머니는 잠깐 말이 없으셨다.그러다 작게 말씀하셨다.“지랄이다 참…”그리고는목뼈랑 나머지도 더 많이 드셨다.나는 알았다.그 말은 화가 아니라 미안함이었다.결국 치킨을 한 마리 더 시켰고막내는 새 치킨을 먹었다.어머니와 나는 뿜어진 쪽을 치워 같이 먹었다.그리고 계산할 때 어머니가 두 번째 치킨값을 내셨다.미.. 사라진 30만원 — 그날 처음 이상함을 느꼈다 (10) 사라진 30만 원으로 처음 이상함을 느꼈다 (그날은 내가 셜록 홈스가 된 날이기도 하다) 그날까지는 정말 평온했다.어머니와의 생활도 안정됐고, 나도 마음을 놓고 있었다.약도 잘 챙겨 드렸고당뇨가 있으시니까 식단도 신경 썼다.현미잡곡밥, 단백질 반찬, 생선이나 고기류까지 나름 균형 맞춰 드렸다.이제는 괜찮겠지 싶었다.그런데 방심은 늘 그때 찾아온다. 옷장이 뒤집혀 있던 날 외출했다가 돌아왔는데방 안이 어딘가 이상했다.어머니 옷장 옷이 전부 밖으로 나와 있었다.순간 심장이 덜컥했다.“어머니 뭐 찾으세요?”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아침에 돈 30만 원 있었는데 없어졌다.”말투는 평온했지만그 말은 평온하지 않았다. 이상한 직감 나는 방을 천천히 둘러봤다.문갑 위 바구니.. 시어머니가 나를 “뚱빠리”라 부르던 날(9) 지나고 보니 어머니는 어느 순간부터당신 감정을 숨기지 않으셨다. 아이들이 마음속 생각을 그대로 말하듯어머니도 그렇게 변해가고 계셨다.어느 날 부부 계모임이 있어저녁을 일찍 차려 드리고 남편이랑 나가려는데마당으로 내려서는 우리를 부르셨다.“야야, 아바이야.”남편을 부르더니 나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너는 저 뚱파리를 꼭 데려가야 하니?너나 갔다 오지 왜 같이 가니?”순간 정적.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질투였는지아이들과 있는 게 싫으셔서였는지지금도 이유는 모르겠다.나는 그냥 웃었다.“다녀오겠습니다 어머니.”그게 다였다. 가위로 자를 기세였다.며칠 뒤였다.외출하려고 옷을 입고 나가려는데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돌아보니어머니가 가위를 들고 서 계셨다.“어머니 왜 그러세요?”어머니가 내 바지를 가리키.. “엄마가 분명 벗었다고 했어요”(8) 한우 먹으러 가다늦가을이었는지, 이른 봄이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공기가 차지도 덥지도 않던 날이었다.우리 가족은 근처에서 한우 축제를 한다기에 다 같이 가기로 했다.아들이 둘이라 먹는 양이 많아 평소엔 삼겹살을 먹었지만, 어머니는 돼지고기를 안 드셨다.그래서 이번만큼은 큰맘 먹고 소고기를 먹으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그날 아침이었다.출발 시간이 지났는데 어머니가 안 보였다.아침도 못 먹은 채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어머니가 들어오셨다.“어디 다녀오셨어요?”“미장원.”순간 우리는 모두 어머니를 쳐다봤다.머리는 십 년은 젊어 보이게 굵은 펌이 들어가 있었고 손톱에는 분홍색 매니큐어가 발라져 있었다.경로당 친구들이 “아들네 가족이랑 나들이 갈 때 꾀죄죄하면 안 데려간다” 했다고 했다. 그래서 꾸미.. 늙은 딸을 키우게 되었다.(7) 퇴원하신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신 뒤 눈에 띄게 달라지셨다. 병원에서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신 것 같았다.하루에 한 번씩 손자들의 국어책을 꺼내소리 내어 읽으셨고 공책에 글자를 따라 쓰셨다. “이게 참 어렵네.” 하루는 받침이 복잡한 글자가도무지 헷갈린다며, 나를 부르셨다.읽는 것도 어렵고, 쓰는 것도 어렵다고 도와달라고 하셨다.처음에는둘이 마주 앉아 공부하는 시간이 의외로 즐거웠다.틀린 글자를 고쳐드리면 어머니는 어린아이처럼 웃으셨다. 하지만며칠이 지나자 나는 점점 답답해졌다.글자를 설명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그 시간 동안 다른 집안일을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결국학습지 선생님을 불러보기로 했다. 학습지 상담소에 전화를 걸었다.“국어랑 수학을 같이 하고 싶은데요.”상담원은 바로 물었다.“..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