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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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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가 나를 “뚱빠리”라 부르던 날(9) 지나고 보니 어머니는 어느 순간부터당신 감정을 숨기지 않으셨다. 아이들이 마음속 생각을 그대로 말하듯어머니도 그렇게 변해가고 계셨다.어느 날 부부 계모임이 있어저녁을 일찍 차려 드리고 남편이랑 나가려는데마당으로 내려서는 우리를 부르셨다.“야야, 아바이야.”남편을 부르더니 나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너는 저 뚱파리를 꼭 데려가야 하니?너나 갔다 오지 왜 같이 가니?”순간 정적.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질투였는지아이들과 있는 게 싫으셔서였는지지금도 이유는 모르겠다.나는 그냥 웃었다.“다녀오겠습니다 어머니.”그게 다였다. 가위로 자를 기세였다.며칠 뒤였다.외출하려고 옷을 입고 나가려는데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돌아보니어머니가 가위를 들고 서 계셨다.“어머니 왜 그러세요?”어머니가 내 바지를 가리키..
“엄마가 분명 벗었다고 했어요”(8) 한우 먹으러 가다늦가을이었는지, 이른 봄이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공기가 차지도 덥지도 않던 날이었다.우리 가족은 근처에서 한우 축제를 한다기에 다 같이 가기로 했다.아들이 둘이라 먹는 양이 많아 평소엔 삼겹살을 먹었지만, 어머니는 돼지고기를 안 드셨다.그래서 이번만큼은 큰맘 먹고 소고기를 먹으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그날 아침이었다.출발 시간이 지났는데 어머니가 안 보였다.아침도 못 먹은 채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어머니가 들어오셨다.“어디 다녀오셨어요?”“미장원.”순간 우리는 모두 어머니를 쳐다봤다.머리는 십 년은 젊어 보이게 굵은 펌이 들어가 있었고 손톱에는 분홍색 매니큐어가 발라져 있었다.경로당 친구들이 “아들네 가족이랑 나들이 갈 때 꾀죄죄하면 안 데려간다” 했다고 했다. 그래서 꾸미..
늙은 딸을 키우게 되었다.(7) 퇴원하신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신 뒤 눈에 띄게 달라지셨다. 병원에서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신 것 같았다.하루에 한 번씩 손자들의 국어책을 꺼내소리 내어 읽으셨고 공책에 글자를 따라 쓰셨다. “이게 참 어렵네.” 하루는 받침이 복잡한 글자가도무지 헷갈린다며, 나를 부르셨다.읽는 것도 어렵고, 쓰는 것도 어렵다고 도와달라고 하셨다.처음에는둘이 마주 앉아 공부하는 시간이 의외로 즐거웠다.틀린 글자를 고쳐드리면 어머니는 어린아이처럼 웃으셨다. 하지만며칠이 지나자 나는 점점 답답해졌다.글자를 설명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그 시간 동안 다른 집안일을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결국학습지 선생님을 불러보기로 했다. 학습지 상담소에 전화를 걸었다.“국어랑 수학을 같이 하고 싶은데요.”상담원은 바로 물었다.“..
그날 목욕탕에서,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를 업었다 (6) (골든 타임이라는 말을 듣던 날) 초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장마가 시작되려는지 날씨는 습했고 하늘은 하루 종일 어두웠다.몸이 무겁다며 어머니가 목욕을 가자고 하셔서우리는 동네 목욕탕에 들렀다.어머니는 세신을 전부 하셨고, 나는 그 근처에서 때를 밀고 있었다.그때 세신 이모가 나를 불렀다.“여기, 빨리 와봐요.” 작은 목소리였지만 당황한 목소리였다.어머니가 들리지 않게 조금 다가와서 말했다.“어머님이 갑자기 축 늘어지시면서 옆으로 돌아누우시라고 해도 답이 없네요" 손에 들고 있던 때수건이 멈췄다. 놀래서 가보니 축 늘어지셔서 흔들어도 대답은 "으으" 하시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목욕탕 안은습기로 가득했는데숨이 더 막히는 것 같았다.모두의 도움으로 탈의실로 모셨는데도 팔다리에 힘이 없었다찬물을 ..
제안 (5) 그 봄날, 어머니가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 그때는 몰랐던 변화의 시작) 동네 벚꽃나무가 봉우리를 열고 눈발처럼 꽃잎을 날리기 시작하던 봄날이었다.어머니와 나는목욕탕에 다녀와 집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마주 앉아 있었다.어머니는 숟가락을 들고 한 숟갈을 드시는가 싶더니갑자기 숟가락을 탁 내려놓으셨다.“가져갈 거면 말을 하고 가져가지.”말없이 때수건을 가져갔다며, 화를 내셨다.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워낙 총명한 분이셨다. 조그만 건물이었지만집세 계산도, 돈 관리도 늘 정확했다.그래서 나는 혹시 내가 어머니 등을 밀어드리고때수건을 내 목욕바구니에 넣었나 싶어괜히 가만히 있었다.잘 못 말하면 변명처럼 들릴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며칠 뒤, 비슷한 일이 또 ..
그분은 쌀 한 톨도 허투루 보지 않던 사람이었다 (4)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시어머니는 1921년생이었다.일제 강점기와 광복, 그리고 6·25 전쟁까지모두 겪으신 분이었다.그래서인지 그분의 삶에는 ‘아끼는 것’이몸에 배어 있었다.쌀 한 톨도 허투루 버리지 않으셨고전기는 늘 최소한으로 쓰셨다.물도 마찬가지였다. 제철이라는 원칙 식재료는 언제나 제철 음식을 사 오라고 하셨다.과일도 제철 과일만 드셨고철이 지나간 과일은 거들떠보지도 않으셨다.생선은 굽기보다는 찌개로 드셨다.생선찌개에 쌈을 주로 드셨다. 상추, 깻잎, 배추, 데친 배추, 쌈으로 드실 수 있는 건 다 드셨다.그래서 다시마, 미역쌈까지 쌈이란 쌈 종류는 사계절 내내상 위에서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그땐 몰랐던 생활의 이유 그때의 나는 그저 까다롭고 엄격한어른이라고만 생각했다.왜 이렇게까지 아껴야..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날들, 그땐 어떻게 버텼을까 (3) 엄마의 반대는 나에게 불쏘시개였다. 순간 깨달았다.아, 나는 그저 살림 밑천인 맏이였구나.집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우리는 그저 마냥 행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둘은 행복했다.둘이 있어 좋았고,귀엽고 귀여운 아들 둘을 얻었다.그 시절의 나는 행복이 이렇게짧게 접힐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신혼을 접고, 시어머니를 모시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실직과어머니의 병환이 겹쳤다.우리는 신혼 생활을 접고본가로 들어가 시어머니를 모시고살게 되었다.돌아서면 밥 차리고돌아서면 또 밥 차리고아이들 돌보고 그때는 정말어떻게 살았는지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손님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시어머니는집안에서 완전한 어른이었다.“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왔다”는 이유로예고도 없이 벨을 누르고 들어오는 손님들.그게 일상이었다.그래도좋은 점..
결혼을 반대하던 엄마, 싸리비를 들고 쫓아오던 날 (2)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데에는각자의 이유가 있다.나에게는 ‘맏이 딸’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맏이 딸이 결혼을 미루게 되는 이유 결혼 이야기는 마음먹는다고 쉽게 꺼낼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특히 맏이로 살아온 딸에게는 더더욱 그랬다.지금 생각해 보면내가 동생들 학비며 생활비까지 보태며 살다 보니직장 생활도, 내 삶도어디선가 재미를 잃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엄마께 결혼하겠다는 말은입 안에서만 맴돌 뿐끝내 꺼내지 못했다.형편상 분명 반대하실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 반대가 시작된 순간 어느 날,데이트를 마치고 남편이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서는데갑자기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엄마였다.그 손에는 싸리비가 들려 있었다.“어디 넘볼 데가 없어서우리 딸을 넘보나, 이 노옴!”때릴 것처럼 다가오..
결혼전 시어머니 첫 만남, 지금도 잊히지 않는 말 (1) 결혼을 앞두고 시어머니를 처음 만나는 날은누구에게나 오래 기억으로 남는다.나 역시 그렇다. 결혼 전 소개팅과 첫 만남의 기억올림픽이 한국에서 열리던 그 해였다.직장 후배이자 같은 동네에 살던, 나보다 한 살 어린 친구가 지금의 남편을 소개해 주었다. 이상형과 전혀 달랐던 사람 나는 고등학교 시절 좋아하던 시인이자 국어 선생님 같은 사람이 이상형이었다.바바리가 잘 어울리고, 얼굴도 손도 파리한 그런 남자.그런데 소개받은 사람은 정반대였다.체격도 있고, 말투도 투박했고, 첫인상은 솔직히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그래서 그냥 차만 마시고 헤어지려고 했다.그런데 그 사람이 자꾸 연락을 해 왔다.찾아오고, 또 찾아왔다.그 시절엔 키스하면 당연히 결혼해야 하는 줄 알던 때라,그렇게 우리는 사귀게 되었다.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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